시효경찰: 컬트 같은 낯설음의 재미
대단히 독특한 연출을 구사하는 드라마다.
등장인물의 대사나 배치 구도가 마치 연극같은 느낌을 준다.
카메라 구도가 항상 동일하게 정면으로 유지되는 경찰서의 장면은 연극의 한 배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등장 인물의 오바된 연기톤 또한 연극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사소하나마 비현실적인 느낌의 장면과 대사들이 난무하는 것은 연극적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한다.
그것은 만화적 연출의 비현실적인 느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인데, 픽션의 비현실성과는 물론 다른 것이다.
내용과 물리적 배경 자체는 대단히 실제적인데, 현실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대화나 말투가 운용된다.
또한 매우 진지한듯 연기를 하고 있으나 사실은 매우 비현실적인 부분도 있다.
키리야마와 쥬몽지가 바로 옆에서 놀이기구를 타면서 모르는척 서로 전화를 하는 장면과 같이 말이다.
이러한 연출은 바로 관객들에게 "진짜 사실"을 알려주는 일이다.
현실인양 몰입해서 보고 있는 드라마나 영화가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는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진짜 사실은 픽션 즉 가상을 보고 있는 당신이라는 것이다.
현실인양 보이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거리두기식의 연출은 언뜻 보기에는 리얼감이 떨어져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이야말로 진짜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관객의 몰입을 방해함으로 객관적으로 극을 판단할 이성적 여유를 제공하려는 그러한 연출은 의도적으로 이미 자주 사용된 바 있는 연출법이기도 하다.
브레히트의 '낮설게 하기'라던간에, 누벨바그의 '거리 두기'라고 하던간에 통상적인 대중적인 몰입형의 연출 방식이 아닌 것들은 사실 익숙하지는 않다.
모순을 모순 그대로 열려진 상태로 보여줌으로써 변증법적 발전을 도모한 것이든, 아니면 몰입 방해를 통해 이성적 상태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든, 극 중에서 보여지는 모순된 장면들은 몰입을 방해해서 불편한 감정을 줄 수 있다.
그래서 통상의 이 방법은 보통 사람들이 재미 없어 하는 연출 방식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비몰입의 상태는 줄거리에서 벗어나 다른 부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러기에 이 드라마의 숨겨진 개그 코드들을 잘 발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독특한 개그 코드가 극 전체를 통해 연출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뭔가 허무개그 아니 황당 개그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뭔 헛소리냐!" 고 할만한 이야기와 장면들이 계속 나타나는데 그걸 즐기다보면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전에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라는 영화에서 꽤나 생경하게 느꼈던 개그 코드를 다시 보는듯 했다.
비현실적 장면이 주는 것을 씁쓸하게 비난하는 마음으로 보기보다는 그것을 나름 웃음의 코드로 즐길 수 있다면 이 드라마는 훨씬 재밌고 풍요로운 드라마가 될 것이다.
스토리 자체는 약간 심심하긴 하다.
뭐 1회에 한 건이 다 소화되는 것도 그렇고, 연출 자체가 범죄의 추리 쪽에 중심이 놓여있지도 않다.
그저 시효 관리하는 경찰이 취미로 수사를 하는 상황 속에서 시효관리과의 사람들의 그저 그런 잡담들과 사소한 일들이 꽤나 많은 양을 차지한다.
극적인 스토리에 매몰되기보다는 그저 일상적인 장면들이 스토리적 줄기 없이 나열되는 느낌이다.
이 드라마는 연출을 5명의 명감독들이 돌아가면서 했다고 한다.
유심히 생각하며 보지않아서 어느 회로 구분되는지는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겠으나, 동일한 구조나 요소 안에서 분명 다른 표현 방법들이 엿보이니 그것을 찾는 재미 또한 쏠쏠할 수 있겠다.
좀 더 쿨하게 연출한 회도 있고, 조금 다르게 웃음의 코드를 만든 회도 있으니 잘 비교해보면서 보는 것도 좋겠으나, 뭐 머리 아픈 일이니 그냥 즐겨도 무방하겠다.
드라마의 톤은 매우 가볍고 우스운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도 영상 자체의 톤은 좀 어둡다.
밝은 대낮인데도 뭔가 그늘진 하늘의 느낌이랄까?
영상톤은 '후루하타 닌자부로'와 좀 비슷한 느낌인데, 배경 음악과 이펙트에서도 매우 흡사한 느낌을 받는다.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들이나 모두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들로 보이지 않는 덜떨어진 대사들이 연결지어 나오는데 그건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뭔가 독특한 페이소스가 느껴지지 않는가?
그것은 마치 어두운 배경과 톤에 버무러지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영상의 걸음 걸이와 함께 말이다.
2010.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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