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키가미: 국가주의라는 주제를 실존주의로 혼동시키다
국가번영을 위해서 전 국민 천 명 중에 한 명은 24살 이전에 국가를 위해 죽어야 하는 법이 있다.
초등학교를 들어 가기 전에 정해지며 죽기 하루 전에나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법의 존재 이유는 국민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단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목적만으로 국민을 무작위로 죽이는 법이 있다는 것이 전혀 받아들일만한 개연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기에 출발부터 삐걱대기 시작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처음부터 주제를 명확히 던져놓고 시작한다.
그것은 국가주의, 전체주의의 문제이다.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한다는 것이 올바른 생각인가?
국가를 위한 죽음이 영광스러운 것인가?
국가는 한 개인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음을 부과할 수 있는 것인가?
파시즘적인 것도 함께 하게 되는데, 이 국가번영유지법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사상범으로 몰리고, 생각할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
어딘가 모르게 깔려있는 국가의 폭력성과 공권력의 억압이 자연스레 보여지고 있다.
국가가 개인을 마구 죽일 수 있는 법이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법이라고 한다.
생명이 그토록 소중하다면 국가가 생명보다 소중할 수는 없는 것인데 말이다.
그 점은 마치 현실의 사형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와 흡사한 면을 보여준다.
한국 영화였다면 이 주제를 끝까지 담아서 뭔가 웅장한 이야기를 펼쳐나갈만도 했다.
그러나, 매우 세세한 것에 주목하고, 작은 사실에 치밀한 것이 일반적인 일본 극의 특징이라 봤을 때 이렇게 거대한 주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러한 소재를 바탕에 깔아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여러가지 장면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마치 죽을 병에 걸린 사랑하는 이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멜로 영화같이 그것으로 감동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국가가 주는 죽음이라는 소재는 그러한 감동적 이야기를 풀어놓기 위한 바탕 소재에 불과했다.
물론 그 법에 대한 이야기도 보여주기는 한다.
그 법을 지지하는 국회의원의 이야기로 그 법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주고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설명하는 수준이 너무 단조로워서 주제를 충분히 말하는 영화라 보기는 어렵겠다.
그래서 차라리 이 영화는 그러한 거대 담론적인 사회철학적 영화라기보다 개인적 삶에 치중하는 영화다.
곧 죽음을 당면한 사람이 자신에 삶에 대해 더욱 진솔하게 직면하게 되는 모습은 실존주의적이다.
어차피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그 죽는 날을 모르기에 죽는 것을 잊고 살아갈 뿐이다.
당장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니 지금 당신이 하려고 하는 것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많은 사람에게 죽음이란 공포이고, 절망이다.
죽음을 앞둔 자에게 닥친 절망이란 영화에서 잠시 보여주었듯이 범죄에 대한 욕망화할 수 있다.
그러한 절망을 이겨낸 자만이 감동스러운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에 타고 있는 것이고, 예정된 죽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단순한 이익 앞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
세상의 영화와 부귀는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며 그것보다 훨씬 소중하고 고귀한 가치들이 있는데,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가치를 진정으로 깨닫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거룩한 가치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모습을 연출해서 보여준다.
아마도 그렇게 고귀하고 아름다운 삶을 국가가 마구 중단시킬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그냥 그렇게 작가의 주장을 받아들여도 무방하겠다만), 그 사람들은 자신이 죽음을 당면했기에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가능한 셈이다.
결국, 주제도 아름답고, 보여주는 스토리도 감동적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초기에 제기되었던 주제를 되뇌어본다면 이러한 스토리의 감동적인 것은 마치 국가번영유지법을 옹호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도대체 뭐란 말인가?
분명히 그러한 국가의 사망 강제법은 잘못된 것이고, 그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개인의 감동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것은 그러한 법의 모순과 잘못을 제대로 증명하고 있는 사례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자기 모순적인 주제와 연출의 갈등은 보는 이의 뒷 맛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좀 더 국가번영유지법의 모순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국가주의, 전체주의적 생각들의 모순에 대해서 보는 이들이 확실하게 각인할 수 있는 사례가 될만한 스토리와 연출을 하는 것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만약 그렇게 영화가 나왔다면 10점 만 점을 주었으리라...
2010.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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